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공격, 고인을 향한 2차 가해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현생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연예인, 정치인, 작가, 크리에이터의 경우 사망 이후에도 온라인상에서 고인을 향한 비난, 조롱, 악의적 댓글이 끊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무례를 넘어서서 디지털 명예훼손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 고인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명예는 더욱 쉽게 침해당한다.
이 글에서는 고인을 향한 악플의 실태, 디지털 명예훼손의 법적·윤리적 쟁점, 그리고 이를 예방하고 제재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에 대해서 살펴본다.
디지털 유산으로 남은 고인을 향한 악플, 단순한 감정 표출일까?
고인이 된 인물에게 비난의 댓글이나 조롱 섞인 언급을 다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나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본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험하다.
고인은 반박하거나 해명할 수 없다
생존한 사람은 비난이나 왜곡에 대해 반박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고인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비난은 본질적으로 ‘방어 없는 공격’이며, 이는 2차 가해에 해당할 수 있다.
유족과 지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고인에 대한 악플은 단지 그 사람을 향한 공격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인을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정서적 피해를 안긴다. 특히 자살 등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고인의 경우, 악성 댓글은 다시 한번 ‘사망 원인’을 반복하게 만드는 잔인한 행위가 된다.
악플은 확산된다
디지털상에서 한번 퍼진 악플은 빠르게 복제되고 유포된다. 이로 인해 고인의 명예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른 이미지”로 고정되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유산 시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디지털 명예훼손"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명예훼손’은 인터넷, SNS, 커뮤니티 등 디지털 플랫폼의 기반하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고인에 대한 디지털 명예훼손은 크게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
고인을 대상으로 한 간접적 명예훼손
- 고인 자체는 사망으로 인해 법적 주체는 아니지만, 고인의 사회적 명예, 인격, 평가는 여전히 보호되어야 한다.
- 현실적으로는 유족이 대리 권리자로서 고인을 대신해 대응하게 된다.
사망 이후의 허위사실 유포 또는 조롱
- 고인에 대한 사실과 다른 루머, 조작된 사진, 조롱 게시물은 명백한 인격 침해 행위
-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고인을 ‘밈’처럼 소비하거나, 악의적으로 풍자하는 게시물이 반복해서 생성되기도 한다.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법적으로 가능한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사망한 사람에겐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오해다. 하지만 한국 법상으로도 일정 조건에서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형법 제308조 및 제309조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
- ‘타인’의 범위에는 고인의 법정 대리인이 포함될 수 있음
대법원 판례(2014도15198 등)
- 고인의 사회적 명예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는 유족 또는 관련 당사자의 고소로 처벌이 가능
- 특히 고인의 사망 원인이나 범죄 의혹과 관련된 허위 보도, 댓글, 영상 등은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인정된 사례 다수 존재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사이버 명예훼손)
-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공공연히 고인을 비방하는 행위 역시 처벌 대상
- 고인을 특정할 수 있고, 유족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면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3천만 원까지 처벌 가능
고인을 둘러싼 악플이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
고인에 대한 악플은 단순한 온라인 이슈를 넘어 다음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된다.
사회적 혐오와 조롱 문화 확산
- 일부 집단은 특정 인물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죽음을 ‘비하의 수단’으로 사용
- 이는 사회의 윤리 기준을 붕괴시키고, 혐오 문화를 정상화시킴
추모 문화의 왜곡
- 장례나 추모의 의미가 퇴색되고, 온라인 공간이 공격의 장으로 전락함
- 고인을 기억하고 기리는 건강한 문화 대신 분열과 갈등이 생김
죽음을 정치적, 상업적으로 이용
- 고인의 죽음을 자신들의 주장에 이용하거나, 유튜브 등에서 조회수를 위한 소재로 악용하는 경우도 많아짐
예방과 대응을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사망자 관련 콘텐츠 자동 필터링 시스템 강화
- 플랫폼에서 ‘고인 관련 악플’을 탐지하여 자동으로 가리거나 신고 유도
- 유족의 요청 시 즉각 게시물 차단이 가능하도록 긴급 대응 시스템 구축
법적 대리인 제도 마련
- 유족이 고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디지털 유산 대리권을 법으로 명문화
- 사망자 명예훼손 전담 신고 창구와 지원 제도 필요
플랫폼의 책임 강화
- 유튜브,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운영진은 사망자 관련 콘텐츠에 대해 명예 보호 책임을 갖고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함
디지털 추모 문화 조성
- 고인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추모 캠페인, 기록관, 온라인 헌화 등의 문화 조성이 필요
디지털 유산 시대에 고인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 우리가 지켜야 할 경계
이미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긴 현생에서의 명예와 기억은 남겨진 사람들 속에 살아 있다. 고인을 향한 악플은 단순한 인터넷상의 분풀이가 아니라, 가장 무력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향한 비열한 공격이다. 이제는 사회가 먼저 나서서 죽음을 향한 예의를 디지털 공간에서도 지켜내야 할 때다.
생전보다 더 취약한 존재가 된 고인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최소한으로 가져야 할 윤리적 감각이다.
고인을 향한 기억을 모욕이 아닌 존중으로 남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의 존엄을 지켜낸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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