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유산은 주로 토지, 예금, 실물 자산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현대인은 매일같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디지털 공간에서 자아를 표현하며, 디지털 자산을 축적한다. 사진과 영상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예술품은 NFT로 거래되며, 개인의 분신은 메타버스 속 아바타로 살아 숨쉰다.
이제 유산은 ‘파일’이고, ‘계정’이며, ‘디지털 지갑’이다. 클라우드, NFT, 메타버스가 일상에 스며든 지금, 우리는 이제 ‘죽은 후 그 자산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기술 변화에 따른 디지털 유산의 새로운 형태와 그에 따른 상속 및 보존의 과제를 분석하려고 한다.
클라우드 속에 저장된 디지털 유산들
클라우드는 현대인의 디지털 금고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진을 인화하지 않고, 문서를 인쇄하지 않는다. 그 대신 구글 드라이브, iCloud, 네이버 MYBOX 같은 클라우드에 모든 것을 저장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저장소를 넘어 기억, 업무, 창작물, 관계의 축적지다.
문제는 접근권이다
사망 후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에 가족이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밀번호, 2단계 인증, 개인정보보호정책에 막혀 계정이 ‘영구 잠금’ 상태가 되는 일이 흔하다. 또한 클라우드에 저장된 콘텐츠는 자동으로 삭제되거나, 사용 요금 미납으로 소멸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응 방안
1. 생전에 ‘디지털 상속 설정’ 기능 활용 (예: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2. 중요 문서, 사진은 외장하드나 별도 보조 장치에 중복 백업
3. 계정 정보를 포함한 디지털 유언장 작성 필수
실전 사례
2022년, 한 40대 가장이 급작스레 사망한 후, 가족은 고인의 구글 드라이브와 네이버 메일에 접근하지 못해 사업 운영 자료, 가족 사진, 유서 파일까지 모두 복구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는 생전에 클라우드 저장소만 사용했지만, 계정 정보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생전에 클라우드 계정 목록과 접근 방법을 간단히라도 정리해두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NFT와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문제
NFT는 ‘소유 가능한 디지털 자산’이다
NFT(Non-Fungible Token)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고유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기술이다. 디지털 예술품, 음악, 트위터 글, 게임 아이템까지 모든 것이 NFT로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 가치는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까지 다양하다.
NFT 상속, 아직 명확한 법적 기반은 부족
NFT는 실질적으로 ‘지갑 주소’와 ‘개인 키’를 통해 접근된다. 하지만 상속자가 이 정보를 모르면 NFT는 영영 접근할 수 없는 무형의 유령 자산이 된다.
법적 쟁점
NFT의 법적 성격이 ‘자산’인지, ‘콘텐츠’인지 국가마다 다르다. 한국은 NFT에 대한 상속세 부과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상속 시 발생할 수 있는 과세 문제, 권리 이전 절차 등이 불투명하다.
대비 전략
1. NFT 소유 현황 및 지갑 정보 명시
2. 상속인에게 메타마스크·코인베이스 등 지갑 접속 매뉴얼 전달
3. 디지털 자산 상속 전문 변호사 상담 권장
관련 판례 및 법률 흐름
미국 일부 주에서는 NFT를 상속 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상속세 평가 기준을 시가 기준으로 환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NFT 자산이 실물 자산인지, 서비스권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여 향후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메타버스 속 나의 분신, 그것도 디지털 유산이 될 수 있을까?
메타버스는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삶의 확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페토, 로블록스, 디센트럴랜드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관계를 맺고, 창작물을 판매하며, 수익까지 얻고 있다. 또한 일부 이용자는 수년간 쌓은 아이템, 월드, 공간, 기록들을 ‘디지털 자산’으로 축적한다.
아바타는 누구의 것인가?
문제는 메타버스 속 자산이 대부분 플랫폼 소유 구조라는 점이다. 즉, 이용자는 아바타를 '사용'할 수 있을 뿐, 사망 후 아바타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는 플랫폼 측이 소멸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예상되는 갈등
1. 자녀가 부모의 아바타, 월드를 상속하려 해도 ‘계정 양도 불가 정책’에 막혀 거절당하는 사례
2. 사망한 사람의 아바타가 다른 이에게 도용되거나 ‘AI 부활 서비스’로 무단 재현되는 문제도 발생 가능
준비 방법
1.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계정 관리 기능 사전 활용
2. 상속 대상에 포함할 콘텐츠 및 자산 명확히 기재
3. 고인의 아바타, 월드 등에 대한 디지털 저작권/사용권 명시
미래에는 어떤 디지털 유산이 생겨날까?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산의 개념은 더 넓어지고 있다. 앞으로 다음과 같은 형태의 유산이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 AI 클론과 디지털 자아
- AI가 나의 언어, 표정, 말투를 학습하여 ‘디지털 클론’을 생성
- 사망 이후에도 가족과 대화가 가능한 AI 유산의 시대가 도래 중
- 미국 Microsoft, 한국 일부 스타트업이 AI 추모 챗봇을 실제 개발하고 있음
2. 생전 콘텐츠 수익의 지속적 발생
- 유튜브, 블로그, 음원 등은 사망 후에도 광고 수익 발생
- 해당 콘텐츠의 저작권 및 수익 분배 문제는 법적 상속과 맞물려 복잡한 이슈로 부상
- 한국의 경우 유튜브 수익에 대한 상속권 인정 판례는 아직 없음
3. VR 공간 유언장
- VR 기반 플랫폼에서 나만의 유언장 공간을 만들어 후손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방식
- 유산이 단순한 자산을 넘어 기억의 전달, 철학의 상속으로 진화
디지털 유산을 위한 현실적 정리 전략
디지털 유산은 사망 직후에 가족이 알아서 정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생전부터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정리가 필요하다.
정리 체크리스트
1.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목록과 계정 정보 기록
2. 암호화폐/NFT 지갑 주소, 로그인 방법, 2FA 해제 가능성 확보
3. 메타버스 계정 및 자산 현황 문서화
4.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상속 의사 명시 (삭제, 이전, 보존 등)
5. ‘디지털 유언장’ 또는 ‘디지털 유산 목록’ 작성
실질적인 팁
1. 이중 인증을 사용하는 서비스는 인증 장비나 백업 코드를 유족에게 전달
2. 유료 서비스의 자동 결제 상태도 미리 파악 필요
3.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만 따로 구분해 두는 것이 좋음
디지털 유산은 더 이상 금고에 보관되지 않는다
클라우드, NFT, 메타버스는 이제 현실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형성되는 자산과 흔적은 모두 미래의 디지털 유산이 된다. 그러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법과 제도, 사회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접근 불가능한 클라우드’, ‘비밀번호를 모르는 NFT 지갑’, ‘삭제된 아바타의 흔적’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이제는 유산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디지털 상속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 준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삶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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