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남겨진 로그인을 지켜라: 게임 계정을 디지털 유산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

dualbrain-news 2025. 7. 30. 15:27

사망한 사용자의 게임 계정은 현실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디지털 유산’이 되고 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의 게임사는 계정의 소유권을 사용자에게 부여하지 않고, 단순한 ‘사용권’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 상당의 게임 자산이 고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남은 가족들은 그 내용을 알면서도 디지털 자산을 유실하는 충격을 겪게 된다.

 

게임 계정을 디지털 유산화 시키기 위한 전략

 

그렇다면 과연 이런 상황을 바꿀 방법이 있을까? 게임 계정을 상속 가능한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법적 대응, 기술적 준비, 사전 관리 시스템이 모두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사용자가 사망 이전과 이후에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사망 이전, 사용자가 디지털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준비해야 할 최소한의 계정 설계

디지털 유산을 안전하게 남기려면 생전에 체계적인 준비가 필수다. 특히 게임 계정처럼 ‘서비스사 중심의 폐쇄 시스템’에서는 사망자 본인의 의사 표현과 정보 전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1) 계정 정보의 보관

  • 계정 아이디,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 연동된 인증 수단 등을 비상 메모, QR코드, 디지털 금고 형태로 보관
  • 클라우드나 종이 형태로 저장하되, 가족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공유 조건 설정 필요

2) 다중 인증 해제 또는 보조 등록

  • 스팀, 롤, 배틀넷 등 대부분의 플랫폼은 2차 인증(OTP, SMS 등)을 요구함
  • 생전에 가족의 연락처나 이메일을 부계정 또는 보조 인증 수단으로 등록해둘 경우, 사후 접근 가능성이 높아짐

3) 유언장에 계정 관련 조항 포함

  • 변호사를 통해 작성하는 디지털 유언장에 게임 계정 정보도 포함
  • ‘어떤 플랫폼의 어떤 계정을 누구에게 이전한다’는 문장을 명시적으로 작성
  • 실제 로그인 정보는 별도 금고에 보관하고, 유언장에는 정보 보관 위치만 기입

이러한 준비는 단순히 재산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사망 후 가족이 고인의 기억과 삶의 흔적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감정유산 관리 전략이기도 하다.

 

디지털 유산으로서 계정 상속을 위한 기술적 대안: 디지털 금고와 상속 플랫폼

게임 계정을 법적 유산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기술적인 시스템을 통해 실질적 이전을 구현할 수 있는 대안도 존재한다.

 

1) 디지털 금고 시스템 활용

  • Everplans, Legacy Locker, Safe Haven, 1Password Family Plan 등은 사용자가 등록한 계정 정보와 로그인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안전하게 보관하고, 사망 이후 상속자에게 자동 전송해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 이 시스템을 통해 게임 계정의 로그인 정보 자체를 유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록 서비스 약관상 ‘소유권 이전’은 어렵더라도, 실질적인 사용 권한을 넘길 수 있게 된다.

2) 멀티시그 또는 가족 접근 기반 보안 설계

  • 암호화폐 분야에서 사용하는 **Shamir’s Secret Sharing(비밀 분산 알고리즘)**을 응용해, 계정 정보를 여러 조각으로 분할하고 가족 중 일정 수 이상이 모여야 복원 가능한 구조로 설계 가능
  • 예: Steam 계정 정보 + OTP 코드 + 복구 이메일 정보를 3개로 나눠 각각 가족 1명, 변호사, 본인 금고에 보관

3) 클라우드 기반 자동 전달 시스템

  • Google Workspace, iCloud, Dropbox 등에서는 사용자 사망 또는 장기 비활성화 시, 사전 지정된 수신자에게 데이터 자동 전달 기능이 있다
  • 게임 계정과 관련된 모든 문서, 로그인 정보, 시리얼 번호 등을 이러한 클라우드에 정리해 놓고, 자동 전달 설정해두면 효과적

이러한 기술적 장치를 조합하면, 게임 계정의 법적 소유권은 아니더라도 실질적 사용권의 전달이 가능해진다.

 

법적 제도 개선 방향과 게임사 정책 변화 필요성

현행 법과 약관은 디지털 자산의 상속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게임 계정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에 따라 제도 개선과 게임사 정책의 변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1) 민법 내 ‘디지털 자산’ 정의 확대 필요

현재 민법은 전통적 유형자산(부동산, 예금 등)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디지털 자산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재산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정보’를 상속 대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게임 계정에 포함된 유료 결제 콘텐츠, 희귀 아이템, 스킨 등도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

 

2) 게임사의 약관 개정 유도

현행 대부분 게임 약관은 ‘양도 및 상속 불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용자 사망 후 유족이 계정을 기념 또는 활용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개선이 요구된다:

  • ‘계정 상속 요청 절차’ 신설
  • ‘사망자 기념 계정 전환’ 기능 제공
  • 유료 자산에 한해 일정 조건부 계정 이전 허용

특히, 유료 콘텐츠가 포함된 계정에 한해 제한적 상속을 허용하는 정책은 유족 보호와 이용자 권익 보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3)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

금융권처럼 게임 계정도 디지털 자산으로 분류되어 상속 지침서 또는 표준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국가가 게임사에 이를 권고하거나, 인증된 ‘디지털 유산 중개기관’을 통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유산으로서의 게임 계정: 단순한 로그인 정보를 넘어선 감정의 자산

게임 계정은 단순한 ‘로그인 아이디’가 아니다. 한 사람이 공들인 시간과 경험, 인간관계, 경제 활동이 담겨 있는 디지털 공간이다.

  • 오랜 시간 쌓아온 챔피언 숙련도, 친구 목록, 랭크 티어
  • 스스로 만든 게임 콘텐츠, 공유한 스크린샷, 커뮤니티 활동
  • 구매 내역이 남긴 흔적과 추억의 아이템들

이 모든 것은 사용자의 정체성과 연결된 감정적 자산이다. 실제로 많은 가족들은 사망한 자녀의 게임 계정을 열어보고 싶어 하지만, 플랫폼의 정책 장벽에 가로막히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상속은 단지 ‘법적 재산 분배’가 아닌, ‘기억을 지키는 디지털 감정 자산 관리’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로그인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게임 계정의 감정 자산화와 디지털 유산의 미래

사망한 사용자의 게임 계정을 상속 가능한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논의는 단순히 '계정 이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디지털 생애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그 흔적을 가족이나 공동체와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게임 계정은 이제 하나의 기억 저장소이며, 시간과 돈, 관계와 감정이 모여 있는 디지털 감정 유산(Digital Emotional Legacy)이다. 생전에 철저한 설계를 하고, 사후에는 기술적 시스템과 법적 절차를 통해 안전하게 이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앞으로 디지털 세대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과제다. 게임사 역시 이용자의 죽음을 단순한 계정 정지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그 계정에 담긴 삶의 흔적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정할 책임이 있다. 게임 계정은 단순한 소모성 아이템이 아니라, 기억을 담은 공간이자 유산이 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디지털 로그아웃 이후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