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예금, 주식만이 유산인 시대는 끝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s)을 생성하고 축적하고 있다. 이메일 계정, 블로그, 유튜브 채널, SNS,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과 문서, 암호화폐, 쇼핑몰 포인트와 같은 모든 디지털 흔적은 사망 이후 남겨지는 ‘보이지 않는 유산’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이 사망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방치되거나, 심지어 소멸된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언장에 부동산과 금융 자산은 꼼꼼하게 적어두면서도, 정작 중요한 디지털 자산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가족은 고인의 이메일을 열어볼 수도, 수익이 발생하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수도 없으며, 클라우드에 저장된 가족 사진에조차 접근하지 못한다. 법적으로 소유권이 있음에도 기술적인 장벽과 서비스 제공자의 정책에 막혀 실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자산을 상속하기 위해 유언장에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내용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법적·기술적 포인트를 하나씩 짚어본다. 당신의 계정과 데이터가 죽음 이후에도 의미 있게 남겨지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디지털 유산인 디지털 자산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디지털 자산이란 단순히 온라인상의 돈이나 암호화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사망자가 생전에 사용한 모든 디지털 기반의 콘텐츠, 계정, 파일, 기록을 포함한다. 실제 법률상 정의는 명확하지 않지만,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디지털 자산으로 분류된다.
1. 접근형 자산: 이메일 계정, 소셜미디어 계정, 블로그, 유튜브 채널, 각종 로그인 정보
2. 콘텐츠형 자산: 클라우드 저장 파일, 사진, 영상, 텍스트, PDF 등 문서
3. 금융형 자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쇼핑몰 포인트, 게임 아이템, 전자지갑 잔액
4. 수익형 자산: 유튜브 애드센스 수익, 블로그 광고 수익, 디지털 제품 판매 수익
이처럼 범위가 넓고 다양하지만, 기존의 유언장 양식이나 상속법 체계는 디지털 자산을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실제로 상속이 가능하더라도 플랫폼 접근이 제한되거나, 법적 다툼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특히 이메일이나 SNS는 고인의 사적인 내용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유족의 접근 권한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수록 생전의 구체적인 지침과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을 포함해야 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계정’이나 ‘콘텐츠’를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은 법적 소유권이 있음에도, 기술적 접근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자산이다. 그래서 유언장에는 디지털 자산 관련 내용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1. 접근 권한을 명시해야 실제 사용 가능
예를 들어, 고인이 블로그 광고 수익을 유언장에 명시하지 않았다면, 상속인은 블로그 운영자임을 입증할 수 없다. 유튜브 채널도 마찬가지다. 수익 계정이 고인 개인 명의로 등록돼 있다면, 계정 이전이나 수익금 회수는 유언장 없이 불가능하다.
2. 소송과 분쟁을 예방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이나 파일, 온라인 저장소 접근 여부로 가족 간 분쟁이 벌어지는 사례도 있다. 누가 계정을 관리할 것인지, 어떤 데이터를 삭제하고 무엇을 유지할 것인지 명시하지 않으면, 남겨진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3. 플랫폼 정책과 충돌 방지
구글, 애플, 인스타그램 등 대부분의 글로벌 플랫폼은 사용자 사망 시 계정을 제3자가 직접 열람하거나 이전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한다. 이 경우, 유언장에 계정 정보와 위임 대상이 명확히 기재돼 있어야 회사 측에 요청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유언장은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문서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내 흔적이 어떻게 남겨질지를 결정하는 법적 선언문이기도 하다.
유언장에 포함해야 할 디지털 자산 관련 핵심 항목
디지털 자산을 유언장에 포함시킬 때는, 단순히 ‘계정을 넘긴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항목을 포함해야 법적 효력과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1. 디지털 자산 목록
어떤 계정과 어떤 플랫폼을 사용 중인지 명시한다.
예:
- Gmail 계정 (아이디: abc123@gmail.com)
- 구글 드라이브, 구글 포토
- 애플 아이클라우드 (Apple ID 포함)
- 유튜브 채널 (채널명 및 URL)
-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 암호화폐 지갑 주소 및 백업 코드
2. 접근 권한 위임 대상
각 자산에 대해 누가 관리 또는 삭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인물을 지정한다. ‘모든 자산을 배우자에게’처럼 포괄적 표현보다, ‘유튜브 채널은 첫째 자녀에게’, ‘클라우드는 배우자에게’처럼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좋다.
3. 처리 방식 명시
데이터를 유지할 것인지, 삭제할 것인지, 상속인이 새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지 등의 의사를 작성한다.
예:
- "모든 이메일은 6개월 후 삭제하되, 가족사진은 보존한다"
- "유튜브 채널은 상속인이 수익 창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다"
4. 계정 접근 정보와 인증 절차
이메일 주소와 계정 비밀번호까지 명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나, 별도로 관리되는 암호 목록의 존재 여부나 위치는 유언장에 기재할 수 있다.
예:
- "계정 정보는 공증받은 문서로 함께 보관되어 있음"
- "2단계 인증 코드는 USB 암호화 저장장치에 있음"
디지털 유언장 작성과 법적 공증 절차
디지털 자산을 유언장에 포함할 때는 단순한 메모나 비공식 문서로는 법적 효력이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공증 절차를 통해 법적 효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종이 기반의 공증 유언장이 기본이지만, 디지털 자산 관련 문구를 추가하는 것은 가능하다.
공증 유언장 작성 절차
1. 공증 사무소 또는 변호사 사무실 방문
2. 디지털 자산 관련 내용을 포함한 유언장 작성
3. 본인의 서명과 날인
4. 공증인의 확인 및 보관
디지털 자산만 따로 명시한 별도의 유언 문서를 만들고, 주 유언장과 함께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때는 ‘부속문서’ 형태로 등록되며, 관리자는 해당 문서를 기준으로 계정 관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추가로 고려할 사항
- 생전 디지털 자산 관리자 지정: 구글, 애플 등의 기능 활용
- 공증 시, 상속인과 함께 확인 절차 진행
- 주기적인 업데이트 필수: 사용 중인 플랫폼은 수시로 변경되므로, 유언장도 1~2년에 한 번은 수정이 필요하다.
내 디지털 자산은 내 의지로 정리해야 한다
디지털 자산은 이제 우리의 삶과 기억, 수익, 기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나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나면 이 모든 자산은 고스란히 봉인되거나 소멸되며, 유족은 복잡한 법적, 기술적 벽에 부딪히게 된다.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을 포함하는 일은 단지 ‘내가 가진 것을 물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흔적을 나의 의지로 정리하고 전달하는 행위다.
구체적인 계정 목록, 위임 대상, 데이터 처리 방식, 인증 방식까지 꼼꼼히 포함한 유언장을 작성함으로써, 나의 디지털 유산이 의도한 방식대로 관리될 수 있도록 하자. 준비되지 않은 디지털 자산은 결국 유산이 아닌 잃어버린 기록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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